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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식단은 있다

 

이 연재 칼럼에서 얼마 전 '나쁜 음식은 없다'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전체 상황을 모두 빼고 음식 자체만을 놓고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 없으며 음식은 먹는 맥락이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이 맥락이란 한 개인의 식생활 즉 전체 식단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맥락이 좋지 않다면 그 가치가 바랄 수 있다. 결국 나쁜 음식은 없어도 나쁜 식단은 있는 것이다.

 

 

 

나쁜 식단이라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얀 쌀밥과 한두 가지 짜디 짠 밥도둑 반찬을 반복적으로 즐기는 식단을 대표적으로 꼽고 싶다. 밥도둑이라 하면 짠 맛을 기본으로 밥을 많이 먹게 만드는 간이 강한 음식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밥도둑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씹으면서 입안 전체로 퍼지는 하얀 쌀밥의 단맛과 밥도둑의 짭짤한 맛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밥도둑을 만나면 그것만으로 평소보다 밥을 훨씬 많이 먹게도 된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이 밥상을 영양적으로 다시 해석해 보면 단순탄수화물과 나트륨 폭탄의 건강에 해로운 밥상이라 할 수 있다.

 

 

 

단순탄수화물은 체내의 혈당과 인슐린 분비를 급격하게 올려 당대사의 부담을 주기 때문에 당뇨의 적으로 여겨진다. 어떤 식품이 혈당과 인슐린 수치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파악하기 쉽도록 계량화한 것을 GI(glycemic index, 혈당지수)라고 한다. GI란 토론토 대학의 데이비드 젠킨스(David jenkins)에 의해 소개된 것으로 포도당 또는 흰 빵을 기준(100)으로 A라는 식품을 섭취하였을 때 얼마나 빠르게 혈당이 올라가는가를 상대적으로 나타낸 수치이다. 흰 쌀밥은 그 값이 86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자체 GI가 높은 식품이라도 실제 식사에서 채소와 같이 소화가 더딘 식품들과 함께 섭취한다면 전체적으로 체내의 흡수속도는 낮아진다. 흰 쌀밥을 먹더라도 각종 나물과 샐러드 등의 다양한 반찬과 함께 먹으면 괜찮다는 뜻이다. 하지만 흰 쌀밥과 밥도둑 밥상에서 다른 채소 반찬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밥도둑의 짠맛은 많은 양의 소금에서 온다.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식염을 통한 과다 나트륨섭취는 고혈압의 위험을 높인다. 소금섭취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고혈압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역학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일반적으로 과다 식염섭취와 고혈압의 연관성은 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짠 음식을 섭취하면 체액의 삼투농도가 증가하여 세포외액량이 늘어난다. 그러면 갈증을 느껴 물을 많이 섭취하게 되므로 체내 혈액량이 증가한다. 특히 소금 감수성이 높은 사람(salt-sensitive)은 소금을 배설하기 위해 정상보다 높은 혈압을 가지게 된다. 즉 당신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과다 소금섭취로 혈압이 높아지기 쉽다는 뜻이다. 실제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 중 높은 소금 감수성을 보이는 비중은 1/3~1/2정도로 크다. 그러니 되도록 짜게 먹지 않는 것이 고혈압 예방을 위해서는 유리하다.

 

 

 

나쁜 식단은 한 끼 식사의 구성이 어떠한가도 중요하고 반복성도 중요하다. 어쩌다 한번 입맛이 없을 때 좋아하는 밥도둑 반찬에 흰 쌀밥 한 그릇 먹는 것까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로 식사는 외식으로 자극적인 것을 선택하고, 어쩌다 집에서 하는 식사는 잡곡밥보다는 흰 쌀밥에 한두 가지 짠 반찬만을 놓고 해결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해볼 문제이다. 밥도둑으로 불리는 음식들은 아무리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해도 기본적으로 짜다. 이런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염도(먹기 전에 예상하게 되는 짠 맛의 정도)가 일반적으로 높아 어느 정도 짜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싱겁게 만들기 어렵다. 설사 밥도둑 음식을 짜지 않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기존 입맛 때문에 먹는 사람이 그 간에 만족을 못하기 쉽다. 그러면 한 번에 먹는 양을 늘리게 되므로 결국 나트륨 섭취는 많아진다.

 

 

 

식생활은 워낙 보수성이 강해서 다른 취향들, 예를 들어 집안 인테리어나 패션 스타일 등에 비해 바꾸기가 힘들다. 한 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거나 개인이 문화권을 바꾸어 이민을 가게 되더라도 가장 더딘 변화를 보이는 것이 식생활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습관적으로 나쁜 식단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해 건강에 위해가 올 확률은 높다. 최근 늘어나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등과 같은 생활습관병에서 식생활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어 왔다. 그러니 건강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식단을 돌아보자. 혹시 식단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의 노력을 시작하자. 이왕이면, 생각 없이 반복하게 되는 나쁜 식단으로 인해 질병이 찾아오기 전에 말이다.

 

 

 

 

 

 

출처 : 조선일보 - 정유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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